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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1 가장 큰 계명 - 막 12:28-34

우리는 지난 주 맹인 거지였던 바디매오가 믿음으로 구원받고 앞을 보게 된 놀라운 사건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눈이 치료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길에서 바로 예수를 따른 바디매오의 결단을 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예수를 따르자고 다짐하였습니다. 바디매오와의 사건 후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그 곳에서 십자가의 길을 준비하시면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서슬파란 논쟁도 펼치십니다. 그리고 그 논쟁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 앞의 사두개인들과의 논쟁입니다. 이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를 시험하여 물은 것이, 형사취수제에 관한 것이었어요. 유대법에는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그 대를 잇게 하기 위해 형의 아내를 취하고 그 첫 아들로 형의 대를 잇게 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형이 죽어서 동생이 형수와 결혼했다가 모두 죽었을 때 부활이 있다면 그 여자는 형의 아내냐 동생의 아내냐 하고 예수께 물어보고 있는 겁니다.

예수께서 강하게 반박하시죠.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권능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아니냐 부활 후에는 혼인하지 않고 천사와 같을 것이다 너희는 틀렸다” 물러설 수 없을 것 같은, 마치 장기의 장군과 같은 상황인데 예수께서 멋지게 멍군을 날리십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 중에 한 서기관이 예수께 나아옵니다. 사실 이 본문의 내용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등장합니다. 거기에서 이 질문자의 태도는 예수를 시험하고자 하는 조금은 거친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에게서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잘 대답하시는 것을 보고 묻는다고 얘기합니다. 조금은 공손한 모습으로 묻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성경에서 잠시 눈을 떼고 생각해 보시지요. 여태껏 신앙생활하시면서 또는 살아오시면서 가장 큰 법칙, 또는 철칙으로 여겨오신 것은 무엇입니까?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사실 이게 쉽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게 중요한 것 같으면 저게 중요한 것 같고 말이죠. 더 쉽게 얘기해서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분 계십니까? 아니면, 예의를 지키는 것이 안 중요하다고 말할 분 계십니까? 돈에 관해 정직한 것은 또 어떤가요? 중요하다고 말하려고 하면 안 중요한 게 없어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봉사, 기도, 전도, 헌금 안 중요한 게 없어요.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후에 많은 논쟁들이 있었어요.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서부터 세금 내는 문제, 예수의 권한에 대한 문제, 세입자에 대한 문제, 그리고 부활에 대한 문제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안 중요한 얘기가 없거든요. 당시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법률이 613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 서기관이 다가와 묻는 거예요.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릎을 딱 치게 만듭니다. 같이 한 번 읽어보실까요?

29-31 예수님의 이 대답이 왜 기가 막히냐고요? 우선, 이 대답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여러 역사를 통해 그리고 성경 말씀을 통해 일러주신 일관된 진리가 들어있어요. 바로 ‘사랑’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신 이 계명이 없이는, 즉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이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할 수 없어요. 우리가 이 땅에 있게 된 것은 왜 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서 창조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또 왜 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새로 세운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그 사랑을 우릴 통해 전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예수님은 그 대답에서 요즘처럼 사랑이라는 개념의 가치가 우스워진 시대에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세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우선 이 마음을 다한다는 표현을 먼저 볼까요? 영어로는 heart 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לֵבָב lē·ḇāḇ 라고 합니다. 이 lē·ḇāḇ 는 숨, 의식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꾸밈이나 위선이 없는 솔직한 나의 속 모습을 이야기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결국 이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는 의미는 겉치레로 혹은 마음에도 없는데 위선적으로 섬기는 척하라는 것이 아니라 진짜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솔직한 모습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목숨을 다하고’ 의 뜻을 볼까요? 원어 nepesh 는 목, 숨, 생명 등을 뜻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장면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기에서 말하는 생령, 즉 살아있는 존재를 말할 때 이 nepesh 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온 우주만물 중에 하나님께서 직접 이렇게 숨을 불어넣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것은 사람 밖에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것을 오늘 본문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자면, 하나님께서 직접 숨을 불어넣어 살게 된 그 목숨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뜻을 다한다는 표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뜻이라는 말은 생각, 목적, 의도 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이해한다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무작정 믿으라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니고 무작정 사랑하라고 해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깨닫고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즉, 뜻을 다한다는 말은 나의 모든 지각을 통한 이해가 수반되는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힘을 다한다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모든 힘의 근원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겠습니까? 앞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마음, 목숨, 그리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하면 그 사랑하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이렇게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모아 사랑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주 여호와 우리 하나님, 한 분이신 분. 그 분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은 돈이 아니에요.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은 명예와 권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은 단순한 육체의 평안함이나 즐거움이 아니에요.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위해 사용될지 언정, 그것들이 잠시 우리의 삶을 여유롭게 할지 언정, 우리의 사랑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진정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할 대상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동의하십니까? 왜냐고요?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고요? 돈도 변하고 권력도 변하고 명예도 변하고 부부 혹은 부모 자식간도 변합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이신 그 분, 우리 주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사랑 받기 합당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고 했어요.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했어요. 변하지 않고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사랑이 그 분께로 향하면 그 사랑의 관계 또한 영원합니다. 혹시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해서 조금 강압적으로 느끼시는 분 계십니까? 그냥 믿으라고 하면 되지 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까지 다해서 사랑하라고 하나… 하지만 그거 아시나요? 우리가 아무리 목숨을 다해 사랑한다고 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이 가장 확실한 사랑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들을 죽이고 죄인을 양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당키나 합니까? 하지만 롬 5:8에서 기록하기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또 이어서 8:15에서 “너희가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그리고 8:32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그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도 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이 우리 앞에 이미 펼쳐져 있기 때문에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씀은 무엇을 새롭고 대단하게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곧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라는 겁니다. 그 사랑의 관계 안에서 함께 교제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사랑의 관계가 형성이 되면 우리는 이 사랑을 이웃을 향해 흘러 보낼 수 있게 됩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면 그 분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알게 됩니다. 겉만 화려한 예배나 특정 의식만을 기뻐하실까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서기관의 말을 한 번 보시지요.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이 서기관의 말을 예수님은 지혜롭게 여기셨어요. 즉, 그의 말이 옳다는 겁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하는 것 처럼우리도 서로를 사랑하며 섬기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난 몇 주에 걸쳐 보았던 말씀, 으뜸이 되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린 아이 하나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가 큰 자다 라는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겸손하게 서로를 위하고 섬기는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길 원하십니다. 이웃 사랑 없이는 계명이 완성될 수 없어요. 그럼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요.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이웃은 누구인가요?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웃 사랑의 최고 덕목이 부모 섬김이라고 했답니다. 부모처럼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잘 섬길 수 있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은 그 부모 모시듯 한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 오가며 보는 사람 거래처에서 만나는 사람도 잘 섬길 수 있다는 얘기 아닐까요? 사람마다 사랑하는 방식은 틀리겠지만 누구를 어떤 자세로 사랑해야 하는지는 명백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그리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바로 우리 삶의, 그리고 신앙의 가장 큰 계명으로 여기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주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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