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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15 주의 오심을 준비하라4 “복중에서도 기쁨으로” 눅 1:39-45

지난 주 우리는 세례 요한의 선포를 보면서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일 중 가장 큰 일이 예수의 증인이 되어 예수를 소개하는 것이되

이를 위해 성령에 충만하여 그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삶을 살자고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야기하기 앞서 여러분께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기뻐하십니까?

그리고 주의 오심을 기뻐하십니까?

이 질문을 붙들고 오늘 본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마리아라는 여인이 어딘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무슨 일일까요?

본문 앞 26-38절에 보면 수태고지, 즉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처녀인 그가 아들을 낳을 것을 알려줍니다.

처녀인 그가 아들을 낳을 것도 이상하고 신기한데

그 낳을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라는 말에 마리아가 얼마나 당황하고 어안이 벙벙했을까요?

두려워 떠는 가운데서도 그녀는 주의 뜻이 자신에게 이뤄질 것에 대해 순종합니다 (38절).

그런데 천사의 이야기 중에 그의 친족 엘리사벳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36절을 보실까요?

그 엘리사벳에게 지금 마리아는 달려가고 있습니다.

산골, 유대 한 동네에 이르렀다고 하죠?

주석에 따르면 이 곳은 헤브론 이라는 도시이고요,

갈렙이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빼앗은 땅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 이스라엘을 7년간 통치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 곳에, 사가랴의 집에 엘리사벳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가랴가 누구입니까?

기억나시나요?

바로 세례 요한의 아버지입니다.

자, 그럼 지금 난임이던 노인 엘리사벳이 임신 중이라고 했는데 그 뱃속에 있는 아이는 누구이겠습니까?

네, 바로 요한입니다.

마리아가 왜 그 먼 길을 손수 찾아갔을까요?

그것도 빨리..

단순히 엘리사벳의 임신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였을까요?

난임이었던 자기 친척이 임신했으니 축하도 해야겠지요.

하지만 더 큰 목적은 엘리사벳에게 찾아가 자신에게 닥친 일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거에요.

마리아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이 너무 궁금하지 않았을까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지금도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당시 풍습 상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쉽게 발설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천사가 알려준 소식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말했다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천사가 일러준 엘리사벳의 임신 사실은 그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상황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데요,

참 기가 막힙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 ‘안녕하세요?’ 하는데

엘리사벳의 뱃 속에 있는 아이가 난리가 난 거에요.

41절을 함께 보실까요?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아이가 뱃속에서 뛰노는 것은 어떤 상황입니까?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 일 테지요.

복중의 아이가 엄마나 아빠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꿈틀꿈틀하는 모습은 얼마나 예쁘고 아름답습니까?

이 복중에서 뛰논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면서도 격정적인 기쁨의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기쁨의 표현이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그가 선포할 예수 그리스도를 복중에서 만났을 때 말이죠.

42절에서 엘리사벳이 이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주지시킵니다.

보실까요?

태아가 성령충만하다는 것이 조금 억지스러우신가요?

하지만 본문 앞에 15절을 보시면

천사가 사가랴에게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그가 태중에서부터 성령 충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이가, 설사 태아라고 할지라도, 성령과 한 분이신 예수를 알아보고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이가 성령 충만하니까 그 아이를 잉태하고 있는 엘리사벳도 성령 충만하여서 아이의 기쁨을 함께 표현합니다.

42절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다시 한 번 공포합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그런데 다음 구절에서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가리켜 뭐라고 말하냐면,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내 주의 어머니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뱃속의 아이를 자신의 주로 인정하고 선포합니다.

여러분, 이게 쉽사리 이해 되시나요?

조카, 그것도 아직 뱃속에 있는 아이 보고 장난삼아 공주님, 왕자님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나의 주인이라고 그 앞에 엎드린다?

이게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분명 엘리사벳이 성령 충만한 상태라고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비록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탄생하시지만 그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성령 충만한 그녀는 단 번에 알아채린 거지요.

그 뱃속에 있는 아이, 요한과 함께 말이죠.

성령충만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십니까?

때로는 방언기도 뜨겁게 하는 것만을 성령충만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배 시간에 뜨겁게 찬양하는 것만을 성령충만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만을 성령 충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본 성령충만은

나의 주가 누구이신지 분명히 알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 앞에서 기뻐해야 하고 무엇을 기뻐해야 하는지 올바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성령 충만할 때 입니다.

반대로 성령충만하지 못하면 나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고

돈을 주인처럼 좋아하고

명예를 주인처럼 따르고

부귀 영화를 주인처럼 사모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도 비록 이제 고작 6개월된 태아에 불과했지만 성령충만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고 기뻐하고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그 뜻을 함께 하여 마리아를 축복하며 선포한 것입니다.

“내 주의 어머니”를 뵙노라고 말이죠.

여러분은 얼마나 주님을 기뻐하고 계십니까?

얼마나 주님을 인정하고 계십니까?

아니, 얼마나 성령 충만하십니까?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여 예수가 우리 주님이심을 어디서든 누구에게는 인정하고 선포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45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이 구절은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축복하는 말의 결론이 동시에 38절 말씀을 되풀이함으로써 정말 예수의 탄생이 마리아를 통해 이뤄질 것임을 재차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일까요?

본문은 주께서 하신 말씀 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씀은 곧 31-33절인데요

먼저 31절을 같이 읽어보실까요?

우선 반드시 이루어질 주의 말씀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스스로 창조하신 인간 탄생의 법칙을 거스르면서까지 아들을 태어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32-33절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마리아를 통하여 낳을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고 다윗의 왕위를 주신다고 합니다.

그가 다스리는 나라가 영원하다고 합니다.

곧 예수를 통한 구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대하던 메시아의 오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메시아의 나라가 영원히 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단순히 우리가 관념적으로만 아는 ‘죄에서 구원했다’의 개념을 넘어서서 영원히 우리가 기쁨을 누리며 살 놀라운 그 나라, 부패하고 죄로 넘어진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그 나라가 오고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입을 통하여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증되고 있습니다.

참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서 여러분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기뻐하십니까?

그리고 주의 오심을 기뻐하십니까?

이 천년 전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기쁨입니다.

그 분의 다시 오심 또한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가 오심으로 우리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 분의 양자로 함께 통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것을 나 혼자만의 기쁨으로 간직하는 것보다

선포하고 그 기쁨을 나누는 우리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뱃속의 아이도 발길질을 해가면서 그 기쁨을 표현하는데

우리라고 왜 못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과 같이 그냥 하루 쉬는 날,

혹은 캐롤 들으며 재미있는 시간 보내는 날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의 통치자이신 그 분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뻐하며 나누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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