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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416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교회IV – 협력, 함께 싸우는 것 - 빌1:27-28


지난 주 우리 함께 나누었던 말씀 기억하시나요?

한 마음으로 견고히 서는 것, steko 는 결국 서로 사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선포한 것이

한 마음으로,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을 양육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말이죠.

오늘은 지난 주에 집중해서 봤던 말씀 바로 뒤,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부분을 통해 한 마음으로 견고히 서는 것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어떻게 보면 한 마음으로 견고히 서자는 지난 주 말씀의 실천편이 되겠습니다.

우선 ‘복음의 신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 주석에 의하면, 이 복음의 신앙이라는 것은 세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ppt] 첫째, 복음과 신앙을 같은 말로 보는 것입니다.

둘째, 복음에서 생겨난 신앙을 뜻할 수 있습니다.

셋째, 복음 안에 있는 신앙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1]

저는 이 세 번째 입장이 본문의 맥락에서 타당하다고 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어떤 사물 혹은 인물에 대해 신뢰하는 마음 가짐 혹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행동이라고 정의할 때,

복음의 신앙이라는 것은 곧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의 행위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두 주에 걸쳐 나눈 내용, 즉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말이

복음의 신앙,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 걸맞은 행위를 보이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기 위해 한 뜻으로 협력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기 위한 공.동.체.로써 한 마음으로 견고히 서자고 이야기한 것이 바로 지난 주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 뜻으로 협력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역시 오늘도 단어의 뜻을 짚어보고자 하는데요,

협력하다의 원어는 συναθλέω /synathleo / 입니다.

‘굉장히 열심히 일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한글 성경의 번역, 협력은 매우 타당합니다.

그런데 이 συναθλέω 의 의미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함께 열심히 일하는데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마치 투쟁하는 것과 같습니다.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

그래서 직역을 하자면, συναθλέω 는 분투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투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분명하게 그 의미를 전달합니다.

다시 본문을 보실까요?

사도바울은 무엇을 위해 분투하라고 합니까?

네,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아까 ‘복음의 신앙’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과 동일한 말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시나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함께 분투하라는 겁니다.

함께 투쟁하라는 거에요.

유진 피터슨이 번역한 메시지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contending for people’s trust in the Message, the good news” (MSG) “사람들이 메시지, 곧 복된 소식을 신뢰하도록 분투하십시오.”

왜 함께 투쟁해야만 할까?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신뢰하도록.

그러나 사람들이 복음을 신뢰하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굳이 말씀 드리지 않아도 사람들이 신앙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 복음 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을 얼마나 무식하고 미련한 자들로 치부해 버리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마저도 때론 세상을 향하여 복음의 신앙을 보여주기 보다

그 신앙은 잠시 뒤에 감춰두고

세상에서 원하는 대로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위해

그리고 그 신앙을 사람들이 보고 소망하게 하기 위해

함께,

함께 분투해야 합니다.

그 복음의 신앙을 살아내기 위해 한마음으로 처절하게 몸부림쳐야 합니다.

간혹 혼자서 신앙생활한다고 교회를 멀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상처 입은 그 분들의 마음도 이해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복음의 신앙을 살아가고 그 신앙을 전하는 일은 함께 투쟁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곧 주께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만드신 이유입니다.

지난 주에 찾아본 에베소서와 고린도전서 말씀처럼 다 각자의 사명을 감당케 하시려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도록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혼자서 그 몸의 모든 역할을 다 하겠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리고 이 함께 분투한다는 것은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사야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우리에게 메시아를 보낼 것을 약속하시면서 주신 말씀이에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또 예레미야 33:2 말씀을 보실까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지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에요.

데살로니가전서 5: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주께서는 그 아들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약속하셨고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개인의 전유물이 아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해 허락하신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며

우리가 이 복음의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며 전하며 또 그로 인해 안 믿던 자가 살아 돌아오는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우리를 통해,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계시는 겁니다.

하나님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 원하는데

우리 뒷짐 지고 가만히 있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모두 구원받기 원하시는데 나 구원받았다고 가만히 뒷짐지고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있어야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또 이 곳에 모인 여러 지체들과 함께, 한 뜻으로 분투할 수 있을까요?

한 뜻으로 함께 싸우는 방법 중에 가장 간단하지만 가장 강력한 방법이 여기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자신을 건져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곳에서 자신을 위해 애쓰는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신과 함께 복음을 위한 일에 힘쓰는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복음 위에 바로 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때로 우리의 모습을 보면 나를 위한, 그리고 내 가족을 위한 기도는 참 편하게 하지만,

남을 위한 기도는 참 어색해 합니다.

공동체를 위한 기도는 더욱 더 그렇고요.

만약 우리가 바울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당장 나를 여기서 꺼내달라고, 이 감옥 문이 무너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큰 낙심에 아예 기도를 못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이 간구, 즉 기도는 공동체를 향한 사랑이 없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기도했기에 비록 몸은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복음의 신앙을 위해 함께 싸울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에 빠진 자를 돕는 것이 또한 함께 싸우는 방법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파견하여 감옥에 갇힌 바울을 돕도록 합니다.

4:18에 보면 이 에바브로디도 편에 바울이 필요한 것들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물질적인 것과 더불어 2:25, 30절을 보면 에바브로디도는 자기 몸이 병들어 상하고 심지어 죽을 정도가 되기까지 바울을 돌봤다고 합니다.

30절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에바브로디도의 이런 헌신은 바울을 향한 빌립보 교회 전체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빌립보 교회의 모습을 보고 바울은 자신의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라고 칭찬합니다 (4:14).

우리 교회 가운데 현재 감옥에 갇히는 것처럼 어려움에 빠진 자들은 없습니다만,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를 위해 불의에 맞서 싸우는 자들을 생각하고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선교지에서 복음을 위해 애쓰고 있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또한 한 뜻으로 분투하기 위해서는 분쟁, 즉 다투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상식적으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기에 문제입니다.

정치판을 보세요.

경제를 위해 마음을 모으자, 국민을 위해 뜻을 모으자 해도

결국 자기 이익에 해가 될 것 같으면 서로 싸우고 돌아서지 않습니까?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당을 짓고, 교회를 찢어 나누고,

세상 법정에 자신들의 이익 여부를 판가름해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고전 1:10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나의 이익을 생각하다 보면 말이 곱게 나가지 않습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 보이면 흘기는 눈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지 말자는 겁니다.

나만의 이익을 생각하고 다투지 말자는 겁니다.

우리는 이익 집단이 아니고, 복음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위한 공동체입니다.

아직 우리도 많은 수가 모이지 않지만 몇 가정이라도 모이기 시작하면 분명 다툼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참고 양보하고 내어주면

한 뜻으로, 한 마음으로 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기 위해 함께 성장하길 꿈꾸었으면 합니다.

덩치가 커지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하나님을 향한 지식을 더해가고 (호 6:3)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기초를 다져가고 (골 1:23)

함께 성령의 열매가 날마다 풍성해져 가며 (갈 5:22-23)

함께 이웃을 향한 사랑을 키워가고 (살후 1:3)

함께 악한 영에 맞서 싸우는 담대함을 키워가고 (요일 5:18)

함께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져 가길 꿈꿉시다(고전 12:25-27; 엡 4:12, 16).

이렇게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기 위해 한 뜻으로 분투할 때,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온 세상에 선포될 것입니다.

[1]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First Edition Notes (Biblical Studies Press, 2006), Php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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