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816 사순절, 예수와 한 마음으로 걷는 믿음의 여정3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기까지 - 눅13:1-9
지난 주에 우리는 헤롯의 살해 위협이나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자신을 죽일 것을 알고도 꿋꿋하게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는 예수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안위나 평안을 내버린 예수의 그 길을 함께 걸어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예수와 한 마음으로 걷는 믿음의 여정’ 세번째 시간으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기까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 사건을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유대 총독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살해한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정확하게 어떤 사건인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중 유대역사가 요세푸스가 기록한 ‘유대 전쟁사’ 중 일부에서 가장 유사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요세푸스에 따르면, 빌라도는 유대인들과 계속 충돌이 있어왔는데 이를 테면,
우상 숭배를 금하는 유대인들 앞에 로마 황제의 초상을 들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온다든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수로 공사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 공사의 자금 조달을 위해 성전에서 거둬지는 돈에 손을 댔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심사를 건드려서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 그 가운데 결국 사복군인까지 동원한 빌라도의 작전 앞에 몇몇 사람이 심하게 맞고 죽기까지 했습니다.
이 사건을 본문 1절 말씀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수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이 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이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죽음을 당했다는 뉘앙스를 띠었나 봅니다.
2절에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 하면,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마찬가지로, 4절 말씀처럼 열여덞 사람이 죽었어도 그들이 죄가 많아서 죽었다고는 할 수 없으되,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절).
가끔 우리, 특히 믿는 사람들이 우를 범할 수 있는 부분을 오늘 본문은 지적합니다.
1993년 10월 10일 서해에서 침몰한 훼리호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하필 그 날이 주일이었는데 많은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반응했냐 하면, 주일 안 지키고 놀러 다니니까 사고 당하고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등지에 쓰나미로 인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일부 목사님들이 설교 시간에 하나님이 우상 숭배 국가를 심판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결코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죄의 많고 적음이나 그 무게로 따져 당장 심판하신다고 한다면 여기에 과연 살아남아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다만, 그 모습들을 보면서도 회개하지 않으면 훗날 그와 같이 망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오늘 본문에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 심판은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누가 죄가 더 많기에 그가 죽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령, 요한복음 8장에서 음행 중 잡혀온 여자를 사람들이 돌로 치려 할 때, 예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 하셨고, 결국 모두 떠나가지 않았습니까?
다시 말씀 드리지만, 죄의 심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이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함부로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그 일들이 우리의 일이 되지 않도록 우리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시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어지는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알아듣기 쉽게 예화를 들어 설명해 주십니다.
무화과나무에 대한 예화인데요,
상황은 이렇습니다.
포도원을 운영하는 한 사람이 그 농장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어요.
3년쯤, 즉 제대로 된 열매가 열릴 쯤 해서 그 나무를 찾아봤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거예요.
포도원지기를 불러 땅만 버리느니 열매 맺지 못하는 이 나무를 잘라버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포도원지기가 1년만 더 지켜봐 달라고 사정합니다.
마치 자신의 탓인 마냥 잘 관리하고 거름도 더 줄 터이니 한 번만 봐달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찍어버리라고요.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까요,
포도나무는 다년생 작물로 매년 열매를 맺는 식물이고 수정이 바람에 의해 자연적으로 이뤄집니다.
반면, 무화과나무는 말벌이 화수분을 옮겨야 수정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무화과나무가 3년이 지나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은 말벌이 없거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2]
어쨌든 포도나무는 매년 과실을 내는데 이 무화과나무는 3년이 넘었음에도 전혀 과실을 내지 못하니 농장 주인이 화가 날 법도 하지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포도원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포도원지기이신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지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빌라도에게 죽은 갈릴리 사람들이나 실로암에서 죽은 사람들을 보고 수군거릴 것이 아니라
너희도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찍혀 버리게 된다고 말이죠.
성경을 통해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리고 기다리신 것이 하루 이틀이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는커녕,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했고
살만하다 싶으면 하나님을 떠나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며 했던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눅 3:8-9)
예수께서 오늘 본문에서 주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 바로 앞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긴박함을 지닌 동시에
그들에게 유예기간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한다 하지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이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또한 우리를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간이 무한정 남은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심판의 도끼가 우리의 뿌리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 비유에서는 단 1년의 시간만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포도원지기가 1년의 유예기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었을까요?
포도원지기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즉, 오늘 비유에서 말하는 유예기간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만들어준 아주 귀중한 시간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면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것은,
자신이 시간을 벌 테니 너희는 어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한 가지 입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란 무엇인가?
우선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무엇입니까?
이사야 55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6.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내 생각이 아무리 맞는 것 같고
내 가는 길이 아무리 훌륭한 것 같아도,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다름을 알지 못한다면
그 길은 악인의 길이오,
불의한 자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주께서도 이를 아십니다.
우리의 한계를 아세요.
그러니까 계속 부르시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그를 부르라…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3년이란 긴 시간 동안 우리가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 하더라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 이름을 통한 죄의 회개는 심판과 종말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이자 최후의 방법입니다.
하나님 앞에 한 없이 작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찾고 부르고
그 분께로 우리의 발걸음을 돌리는 것!
그래서 주께서 진정 원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주의 제자가 되는 것!
이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의 메시지를 우리만 가지고 있어야 할까요?
주께서는 모든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벧후 3:8-10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주의 심판 날 역시 아무도 모르게 불현듯 찾아올 겁니다.
그 전까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십자가를 전하는 것은 먼저 믿은 우리의 당연한 도리이며 우리 신앙의 열매 아닐까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3-15)
아멘.
[1] Flavius Josephus and William Whiston, The Works of Josephus: Complete and Unabridged (Peabody: Hendrickson, 1987).
[2] Patricia L. Crawford, “Fig,” ed. Mark Allan Powell, The HarperCollins Bible Dictionary (Revised and Updated) (New York: HarperCollins, 2011), 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