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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16 또 다른 보혜사 (Another Helper) – 요 14:8-17


오늘은 성령강림절 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신 날을 기뻐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을 영어로는 Pentecost, 즉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요,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뒤 오십일이 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부활하신 뒤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셨다고 하셨으니까

하늘로 올라가신 뒤 열흘 뒤이기도 합니다.

이 성령강림절 혹은 오순절을 여러분께서는 얼마나 기뻐하고 계십니까?

이 시간, 성경을 함께 살펴보면서 이 날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날인지 알아보고, 그 가운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와 지지난 주 말씀을 나눌 때 언급했던 부분입니다.

예수께서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큰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도마는 도대체 가시는 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투덜댑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8절에 빌립의 말이 이어집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그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이미 나를 보았으니 아버지를 본 것이다.’

이 말씀은

요 1:18, 12:44-45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믿지 못하겠거든 행하신 일들을 보고서라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1절).

그런데 그 다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①“…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②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③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새번역).

첫 문장은 그럭저럭 이해가 됩니다.

베드로도 예수를 따라 잠깐이나마 물 위를 걸었고

예수께서70인을 둘씩 짝지어 전도하라고 보내셨을 때에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보다 큰 일, 즉 예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하십니다.

더 의아한 것은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어서 이래라 저래라 알려주셔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아버지께로 가니까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일까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이상하기만 한 이 말씀들이 16-17절 말씀으로 넘어오면서 맞아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우선 16-1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께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달라고 간구하시겠다고 합니다.

‘또 다른 보혜사’ 라는 표현이 조금 어색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줄곧 성령님=보혜사 라는 공식을 갖고 있었는데 ‘또 다른’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니까요.

예수께서 ‘또 다른’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신 것은 예수 스스로가 보혜사요 대언자이신데 (요일 2:1)

자신은 아버지께로 가시기에

이 땅에서 그의 이런 역할을 대신할 분을 아버지께 구하겠다는 말이기에 그렇습니다.

결국은 예수와 같은 분이로되

살을 맞대던 예수와 달리

마음 속에서 살아 역사하며 예수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하시는 분,

그 성령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보혜사, 즉 돕는 자요, 변호인이요, 대변인이요, 위로자인 그가 오셔서 우리 안에 영원토록 거하시면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아까 우리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던 예수의 말씀,

예수께서 하신 일, 오히려 그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은 바로 15절 말씀입니다.

예수를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

조금 허무하신가요?

무엇인가 시대를 분별하고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해안을 주실 것이라 생각하셨나요?

아니면 눈빛 하나에 귀신이 쫓겨나가는 능력을 생각하셨습니까?

혹은 말 한 마디로 세상을 바꿀 능력을 기대하셨나요?

그것도 아니라면 영화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들처럼 무지막지한 힘을 주실 것이라 생각하셨습니까?

주께서 원하신다면 안될것도 없지요.

그런데 여러분,

시대가 갈수록 사랑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 깨닫고 계십니까?

예수를 사랑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도 깨닫고 계십니까?

각종 미디어를 통해 다가오는 문화가

내 손에 있는 전자기기들이

나를 둘러싼 경제/정치적인 압박과

개인의 삶에 펼쳐진 치열함과 그에 따른 고통들이

나에게서 예수를 생각하는 마음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을 무거운 의무와 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워낙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시대에 살아가다 보니

사랑의 개념도 생각하기 나름이고

사랑하는 존재도 자기가 좋으면 그만입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가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다고 한들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은

참 미련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를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고자 믿음의 신실함을 간직하는 것이 너무 미개해 보일 정도입니다.

예수를 사랑하자고 잘못 말했다가는 소위 매장당하기 십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우리의 힘으로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 같은 촛불과 같은 연약한 존재들 아닙니까?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노련한 문화의 유혹에,

나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자극들에,

금새 사랑을 고백하는 우리들 아닙니까?

그러기에 예수를 사랑하여 그의 말씀을 따르게 해 달라는 그 간구는

우리 인생에 가장 위대한 간구 중 하나요

반드시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영원토록 붙잡아 주셔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14절 말씀에 예수께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말씀하셨다지만

우리가 예수께 돈을 벌어달라고 구하겠습니까?

아니면 명예와 권세를 얻어달라고 구하겠습니까?

좋은 차나 으리으리한 집을 사달라고 구하겠습니까?

A급 남편이나 부인을 구해 달라고 하겠습니까?

오직 우리의 구할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를 사랑하고!

그의 피로 하나된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

이것을 구할 때 세상은 알지도 못하고 감히 받지 못하는 진리의 영,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이 놀라운 사랑을 이뤄가십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요일 4:10-17, 개역개정).

사도 요한의 이 놀라운 고백과 선포가 마음 깊이 다가오십니까?

이 사자후의 현장이 아까 여러분 읽으신 사도행전 2장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 오직 성령 충만하기를 구했을 때,

다시 말해, 예수를 사랑하고 그의 뜻대로 살기를 뜨겁게 구했을 때,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제자들의 머리 위에 임하고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갖고 있던 두려움과 의심은 모두 떨쳐내고

자신들을 향해 술에 취했다고 손가락질 하는 자들을 향해

담대히 외친 것 아닙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담대한 믿음의 선포 위에 주께서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주를 사랑하되 죽기까지 사랑하며 그의 뜻을 따라 죽기까지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사랑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

예수께서 자신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또한 교회로 부르신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서 사랑이 식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를 향한 사랑이 점점 식어지고

이웃을 향한 사랑이 점점 식어지는 것

우리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힘으로 조절이 됩니까?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마냥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 역시 사랑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의 유혹과 핍박이 찾아와도,

고난이 몰려와도,

내 주 되신 예수를 더욱 사랑하게 하십니다.

내 욕심이 솟구쳐 올라도 예수의 그 사랑 따라 내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고

우리의 머리이신 예수를 마음껏 사랑하며

그의 길을 따라 행할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주신 이 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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