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816 지혜로운 청지기로 인정받으려면 – 눅 16:1-13
지난 12일 월요일 저녁 대한민국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경주에서 발한 5.8 규모의 지진으로 인해 경주 인근은 물론 이곳 인천까지 그 진동이 감지 되었습니다.
경주와 인근 지역은 건물이 손상되거나 사람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지역에는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만 저와 가족들도 얼마나 놀랐는지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지진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지진의 안전지대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만,
사실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에서 안전지대를 찾고 있습니다.
즉, 내 삶에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혹은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그 무언가, 누군가, 혹은 어딘가를 찾고 있다는 거죠.
이를 테면,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나 동업자가 되든지, 가정을 이루든지, 사람을 안전지대로 삼는 경우입니다.
보험도 좋은 예가 되지요.
혹시 모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안전지대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안전지대로 인식되는 것은 돈과 재물입니다.
왜 그렇게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 합니까?
당연히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지만
더 나아가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풍요롭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부자라면 뒤에서는 욕할지 몰라도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것이 이 사회의 모습이니까요.
엊그제 사석에서 우스갯소리로 병원 갈 때는 돈 있는 것처럼 제대로 입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살다보니 조금 더 쉽게, 그리고 많이 벌기 위해 부당해 보이거나 위험해 보이는 길이라고 해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최근에 사기 혐의로 구속된 청담동 이 모씨는 자주성가형 주식부자라고 해서 방송에도 많이 출현했고 SNS 를 통해서 수입자동차 등 자신의 부를 자랑해서 많은 사람들을 현혹했습니다.
자신에게 투자하면 떼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면서요.
이렇게 돈과 재물이 우리 인간의 안식처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성경은 오히려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함께 살펴 보실까요?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 주인에게 어떤 이가 와서 귀띔을 해줍니다.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거에요.
여기에서 낭비한다는 표현은 마치 흩으러 놓듯이 돈을 아무런 목적도 없이 마구 사용한다는 뜻입니다.[1]
그 이야기를 들은 주인이 청지기를 부릅니다.
2절을 같이 읽어보실까요?
여기에서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는 말은 하던 일을 정리하고 손을 떼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재산을 관리하던 회계장부를 넘기라는 말이기도 합니다.[2]
이것은 단순한 일 자리를 하나 잃었다의 의미를 넘어섭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 재산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던 사람으로써 주인의 집이 곧 자신의 집이었기 때문에 해고돼 버리면 살 곳도 잃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더불어, 당시 고대 로마 상황에서 비록 주인의 돈이긴 하나 많은 재산을 움직이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청지기들은 제법 사회적인 위치도 있었다고 하는데,[3]
지금 회계장부를 반납하라고 하는 말은 곧 사회적인 지위나 명예마저도 잃게 된다는 말이겠지요.
말 그대로 첩첩산중 입니다.
절망스러운 청지기의 마음이 3절에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청지기는 그 주인에게는 어떤 항변도 하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것이 매우 놀라운 광경이라고 하더군요.
중동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자리를 회복시켜 달라고 호소한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성경에서 아담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변호하려고 애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변호를 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청지기는 이를 안다는 듯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주인의 처분에 자신을 맡겼습니다.[4]
그런데 주인의 최종 처분이 내리기 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자신이 하던 일로 이 위기를 모면하려고 합니다.
4절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호의를 사서 자신이 쫓겨나더라도 거처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고 하니,
장부 조작이었습니다.
소위 이중장부를 만드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한 명씩 불러모읍니다.
이 빚진 자들은 소작농들이고 지불해야 할 소작료가 밀려 있는 것이라고도 합니다.[5]
어쨌든 그리 불러다가 이중장부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기름 백 말을 빚진 자에게 반을 깎아 오십을 빚졌다고 쓰라고 합니다.
“이 기름 오십 말은 당시 화폐 약 500 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었고 이는 곧 농장 노동자의 일년 반 품삯”이었다고 합니다.[6]
또 밀 백 석을 빚진 사람에게는 팔십 석을 빚졌다고 쓰라고 합니다.
이렇게 빚의 많은 부분을 탕감 받은 사람들이 이 청지기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마치 자신들의 구세주처럼 생각하겠지요.
그렇다면 나중에 이 청지기가 집에서 쫓겨난다 하더라도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은 이 청지기에게 상당한 친절을 베풀 것이 분명했습니다.[7]
그런데 문제는 주인입니다.
이 청지기의 농간으로 인해서 자신이 받아야 할 많은 돈을 순식간에 잃었거든요.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타난 부자 주인의 태도는 예상을 뒤엎습니다.
8절 말씀에서 보시면, 일을 지혜롭게 했다고 칭찬합니다.
빚을 다 받지 못해서 금전적 손해는 있었겠지만 청지기의 사기 행각이 오히려 동네 사람들로 하여금 부자 주인의 너그러움을 칭찬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빚진 자들은 아직 청지기가 해고된 지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청지기가 해고되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빚을 탕감해준 것은 당연히 그 주인 부자라고 생각을 하겠지요.
예수께서는 이 청지기의 모습을 빗대어 이 세대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의 아들들은 곧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말함이고, 세대의 아들들은 율법과 상관없이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8]
그렇다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사기꾼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일터에서 이중장부를 만들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다만 예수께서 이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하신 것은 자신의 주인이 한 없이 너그러운 사람임을 확신했고,[9]
이를 토대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로 인식하여서 해결책을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겼다는데 있습니다.[10]
그렇다면 아까 서두에서 말씀드린 성경의 재물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 볼까요?
9절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4절에서 청지기가 혼자 중얼거린 말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불의의 재물’에서 ‘불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11]
곧 세상의 돈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입니다.
앞에서의 청지기의 이야기를 통해 적용해 보면,
어차피 돈이 내 손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돈 일진데,
그 돈으로 나의 안식처를 보장해 줄 친구들을 사귀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내 육신의 몸을 누일 거처를 마련해 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바로 나의 영원한 안식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보장입니다.
그럼 그 세상의 재물로 사귀는 친구들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이 제물로 어떤 친구들을 사귀어야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요?
한 성경 관주의 해설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에게 절박하게 요구되는 것은 그들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복음’의 전반부에서 하나님 나라의 몫이 약속된 사람들 가운데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이다. 이들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보증해 줄 사람들이다.”[12]
갑자기 왜 또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말이 나오냐고요?
오늘 본문에서 쓰인 재물을 뜻하는 원어는 μαμωνᾶς mamonas 입니다.
이 μαμωνᾶς mamonas라는 것 자체, 즉 재물 자체가 악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 것을 내 안식처로 삼고 신뢰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 이것은 하나님을 능가하는 신이 되어 버립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즉, 그 세상의 재물들을 꽁꽁 감싸 안고 있지 말고 그 소유로 친구들, 즉 가난한 자들을 도우면 그 때 비로서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행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지난 번 나눴던 누가복음 12장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 12:33-34)
지난 주에 오셨던 분이 이런 얘기를 하시더군요.
“그렇게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 살았는데 나이 들어보니까 그 돈 내가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뭐하러 이러나 싶어요.”
창고를 더 지어놓고 쌓아놓고 평생 즐기자던 한 부자의 이야기를 기억하시잖습니까?
그렇게 쌓아놔도 그 날 밤 목숨 잃으면 끝이에요.
그리고 그는 재물을 믿었지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았으니 영원한 안식도 잃게 된 거에요.
제가 세상 얼마 안 살았지만 돈처럼 허무한 것도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압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짧은 인생을 이처럼 허무한 돈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숨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데 내 돈 주머니만 바라보고 있을 겁니까?
내 통장의 잔액이 하나님 나라로 가는 티켓이 될 수도 없는데 말이죠.
12절 말씀처럼, 내가 남의 것, 즉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돕지 못하는데 누가 나의 것, 즉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우리에게 주겠습니까?
제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꼭 나누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돈을 벌거나 쓰거나 갖고 있는 행위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돈을 이 교회에 다 갖다 바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수중에 있는 돈을 여러분의 것으로 여기고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불의한 재물로 여기고 그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그 행동이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동이요,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인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요?
내 소유를 팔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굳은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내 삶의 모든 부분을 다스리신다는 증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지혜로운 청지기로 인정받으실 수 있으십니까?
[1] Johannes P. Louw and Eugene Albert Nid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96), 574.
[2] 케네스 E. 베일리,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 고대 중동의 삶, 역사, 문화를 통해 본 복음서 trans., 박규태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6), 520.
[3] 윤철원, 누가복음, ed. 성결교회 성서연구원, 서울신학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부천: 서울신학대학교 출판부, 2014), 430-1.
[4] 베일리, 522.
[5] 성경전서(관주 해설)(Nkgo88ti)(색인)(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2009), 누가복음 16:5-7.
[6] 베일리, 527.
[7] J. Nolland, Luke 9:21-18:34 (Word Books, 1993), 800.
[8] 윤철원, 432-3.
[9] 베일리, 528.
[10] 성경전서(관주 해설)(Nkgo88ti)(색인)(개역개정판), 누가복음 16:8.;”The steward has shrewdly appraised the situation in which he found himself and acted in the one way that he can to save himself. The challenge is to have the shrewdness to recognize and seize the opportunity that exists in the midst of threat. We should no doubt apply this to the challenging development in events brought about by the presence and ministry of Jesus.” Nolland, 802.
[11] Nolland, 801.
[12] 성경전서(관주 해설)(Nkgo88ti)(색인)(개역개정판), 누가복음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