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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16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 그리고 종 – 눅 17:5-10


오늘은 제가 퀴즈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판매되는 자기 계발서가 몇 권이나 될까요?

제가 국내 대형 인터넷 서점 중의 하나인 yes24.com 에 들어가서 살펴본 결과 2016년 9월 30일 기준으로 모두 2,383 권의 책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서적이나 다른 서점에서만 판매하는 책을 포함시킨다면 더 많은 수의 자기계발서가 이 세상에 나와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이 뿐일까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방송 등 각종 매체에서도 인문학강좌니 특강 등이니 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계발에 관심을 갖게 합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계발에 신경을 쓸까요?

아마도 성공하기 위해서 이겠지요.

보다 직접적으로 말해서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 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멋진 꿈을 가져라,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꿈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라, 그러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책만 읽으면 당신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자극합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무한경쟁 사회이기 때문에 자기 계발을 하지 않고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해, 많은 돈을 벌고 조금 더 여유 있게 살려면 기독교인이라도 별 수 없습니다.

성공을 위한 자기 계발서를 읽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려는 기독교인들에게 오늘 말씀의 앞부분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6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실까요?

이 말씀은 마가복음 11:23과 매우 비슷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마태복음 21:21도 읽어보실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그리고 이 말씀도 많이 회자됩니다.

마가복음 9:23 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을 빼놓으면 섭섭하겠지요.

빌립보서 4:13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들을 읽은 기독교인들은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그래! 믿음만 있으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구나!

믿음만 있으면 산도 옮기고 뽕나무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으니까 한 번 해 보자!”

앞에서 나눈 말씀들을 적어가며 암기해 가며 열심히 달려갑니다.

다행히(?)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성공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성공과 무엇이 다릅니까?

방금 전 나눈 말씀들이 그저 자기 계발서처럼 쓰인 것은 아닌가요?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우리의 신앙은 어느 새 세상의 것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역시 세상의 기준에 의해 평가될 때가 많지요.

가령,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하고, 연봉 높은 직장에 취직하고, 집안 배경 좋은 배우자 만나서 결혼해야 신앙 생활 잘 했고 믿음 좋다는 소리 듣습니다.

시골에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사람이 예수 믿고 난 뒤에 탄탄대로가 열려서 대학 총장이 되었다는 간증 정도는 나와야 뽕나무를 바다에 심는 믿음 좋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저의 어투가 불편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실제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현상과 결과에 집착합니다.

정말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그 결과만을 가지고 믿음의 승리라고 표현합니다.

가시적인 큰 변화가 있어야 믿음의 역사라고 찬양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자책하거나 손가락질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그런 믿음이었습니까?

과연 세상의 성공을 위한 믿음이었습니까?

진정 주께서는 세상에서의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습니까?

7절부터 이어지는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종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종이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왔지만 주인은 그에게 편히 쉬라거나 일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주인 옆에 가서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은 종에게 어서 가서 자신의 먹을 것을 준비해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종에게는 자신이 먹을 때 옆에서 수종을 들고 있다가 자신의 식사가 다 끝난 후에 식사를 하라고 합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왔는데 얼마나 배가 고프겠습니까?

하지만 주인은 종의 배고픔 따위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밖에서 일하는 것과 들어와서 주인의 식사를 챙기고 수종 드는 것 모두 종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처럼 주인은 감사하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종은 그저 명 받은 대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10절에서 예수께서는 이 종의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대입하십니다.

10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무익한 종이 되라고 말이죠.

여기에서 무익하다는 말은 “worthless” (NRSV) or “unworthy” (NASB, NIV)[1] 로도 표현됩니다만,

문맥상 unprofitable (rather than “useless”)[2]로 읽는 것이 더 명확해 보입니다.

Unprofitable의 사전적 의미는 ‘1. 수익을 못 내는 2. 이익이 없는, 이로울 것 없는’ 입니다.[3]

즉, 이 종들은 자신을 위한 수익을 내지 않는 종들이에요.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종들이에요.

그저 맡겨진 일만 할 뿐, 그로 인한 어떤 대가나 보상도 바라지 않는 종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Unprofitable servant 무익한 종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세상의 성공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이 종의 모습과 과연 닮아 있습니까?

전혀 다릅니다.

아주 다릅니다.

세상 논리로는 자신이 노력한 것에 분명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하고 자신을 계발하고 그로 인해 부와 명예를 창출할 수 있어야 성공했다고 인정받고 박수 받습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에 앉아 있으면 믿음이 좋아서 복 받아서 성공했다고 박수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 주께서 말씀하시는 모습은 뭐에요?

무익한 종이 되라는 겁니다.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그저 시키는 일을 잘 감당하는 그런 종이 되라는 겁니다.

참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어떤 이익이나 대가, 보상 보다 오직 주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가기로 결단한다면

그 순간, 이 비상식은 상식이 되고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 집니다.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고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 자기 계발서처럼 사용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나를 그저 무익한 종으로 여기고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모든 인생을 맡기는 것,

그래서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 읽었던 말씀들을 보십시오.

합 2:3-4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시 37:1, 4-5, 7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참고 기다리라고 하세요.

세상에 나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벌고 명예를 쌓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고 참고 기다리라고 하세요.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렇게 주의 말씀을 기다리고 지키느라 손해 보는 자가 가장 작은 자 같고 실패자 같겠지만,

성경대로 본다면 이런 사람이야 말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 뽕나무를 옮겨 심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물론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주께 순종했더니 주께서 부와 명예로 복 주실 수 있어요.

이것도 분명 주께서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앞뒤가 뒤바뀌면 안됩니다.

뽕나무라는 결과나 현상이 먼저가 아니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먼저 입니다.

나는 주의 종이기 때문에 주께서 부하게 하시면 부요한대로, 가난하게 하시면 가난한 대로, 강하게 하시면 강한 대로, 약하게 하시면 약한 대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면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군사이기도 하고, 친구요 동역자 이기도 하지만, 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모든 모습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종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종과 같이 내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고 여전히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주장하고 있다면,

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친구나 동역자가 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이익을 얻는 수단이 아닙니다.

잘 살기 위한 보증수표는 더더욱 아닙니다.

아무런 대가나 보수도 바라지 않고

내 주인 예수께 내 목을 내어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겨자씨 만한 믿음입니다.

딤후 1:11-12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First Edition Notes (Biblical Studies Press, 2006), Lk 17:10.

[2] Max Zerwick and Mary Grosvenor, A Grammatical Analysis of the Greek New Testament (Rome: Biblical Institute Press, 1974), 250.

[3] http://endic.naver.com/enkrEntry.nhn?sLn=en&entryId=5731464f023f4fe38d7322a1bbd11f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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