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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16 긴박하게, 그러나 철저하게 준비함으로 – 마 24:36-44


혹시 교회 들어오실 때 냄새가 좀 났지요?

지난 목요일 오후 교회 문을 연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심한 구린 내가 코를 찔렀기 때문입니다.

가끔 하수도에서 냄새가 올라오긴 했었는데 이번엔 너무 심해요.

그래서 불을 다 켜고 고개를 돌려보는 순간, 아찔했습니다.

바닥에 물이 고여있는 거에요.

곧 바로 건물 관리소장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아니라 다를까, 2층 하수도가 꽉 막혀서 물이 역류 했었답니다.

관리소장님이 오셔서 여기까지 이럴 줄은 몰랐다고 죄송하다고 하시지만, 이미 넘친 오물 어쩌겠습니까?

마른 수건으로 물을 다 걷어내길 수 차례,

주방 세제를 풀어서 대걸레로 닦고,

걸레를 빨아서 다시 한 번 닦고,

물티슈를 자루에 끼워서 또 한 번,

그리고 세제를 뿌려서 다시 한 번,

밤에 와서 다시 닦기를 두어 번…

그렇지만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더군요.

왜 하필 그 날 따라 병원 예약을 잡아서 교회에 없었는지…

물이 어느 시각에 넘칠 것을 알았더라면 물이 넘지 못하게 준비하였겠죠.

하지만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단순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습니다만, 노아의 홍수 때 사람들도 그렇게 난리가 날 줄 몰랐겠지요.

오늘 복음서 말씀에 따르면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기까지 사람들은 그저 자신들이 즐기던 삶을 즐기고 있었어요.

죽기 바로 전까지 그들은 그렇게 즐기고만 있었어요.

창세기 6장에서는 당시 사람들에게 대해서 이렇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창 6:11-12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이런 자들이 과연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는 모습을 좋게 보았겠어요?

왜 저런 배를 짓는지 민감하게 반응이나 했겠어요?

그들에게 분명 기회는 있었어요.

벧전3:20에 보면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다고 말씀하고 있고,

벧후 2:5에 보면 노아를 ‘의를 전파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분명 전했을 테지만,

그래서 하나님께서 방주가 다 지어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셨을 테지만,

그들은 오늘 말씀대로 똑같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갔다는 말이죠.

그러다가 엄청난 물이 자신들을 휩쓸어 갈 때, 그제서야 ‘아..우리가 한 발 늦었구나..’ 했겠지요.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39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오늘부터 4주간 우리는 대림절의 기간을 보냅니다.

대림절 후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대림절부터 성탄절까지의 기간은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부순다는 말씀대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대로,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난다는 말씀대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아기의 모습으로, 또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기간입니다.

동시에 다시 오실 주님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하는 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다시 오심, 즉 재림을 말할 때 사용되는 단어의 그리스 원어는 Parousia /puh-roo´zhee-uh/ 라고 합니다.

이 말은 “현재” 또는 “도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1] “오는 중”이라는 뜻을 가지기도 합니다.[2]

이 단어의 뜻에서도 분명하게 말하듯이 예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승천하시는 예수를 멍하니 바라보는 제자들에게 천사들이 한 말이 있습니다.

행 1:10-11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그런데 문제는 그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36절을 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아들, 즉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한 분이신데 왜 모르실까 라고 의문을 가질 법도 합니다만, 완전한 사람이셨기 때문에 모른다고 하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3]

사도행전 1장에서도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합니다.

행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하지만 그 정확한 시기를 모른다고 해서 이것이 마냥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고만 있을 문제는 더더욱 아닙니다.

갑자기, 어느 순간, 도둑같이 오실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3-44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우리가 어느 시간에 주님 오실지는 알지 못하지만, 준비하고 있으라 말씀하십니다.

여러 징조들을 통해 그 때가 점점 가까워 오고 있다고 추측합니다만, 여전히 정확한 때는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재림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 매우 긴박한 사안인 동시에 재림이 있기 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ppt-긴박 & 준비)

준비하고 안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매우 달라집니다.

40-41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사실 40-41절의 해석에 대해서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

데려간 사람은 어디로 데려간 것이며 버려진 사람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본문 앞의 31절 말씀처럼 그가 나팔 소리와 함께 이 땅에 임하실 때 천사들을 통해 택하신 자들을 불러모으실 것이고, 그렇게 택하신 자들이 데려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버려진 자들은 심판을 받겠지요.[4]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오실 때, ‘데려가고 안 데려가고’ 즉 구원받을 자와 심판 받을 자를 구별하는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5]

그래서 주께서42절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그렇다면 다시 오시되 생각하지 않은 그 때에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일단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하는 본보기가 본문 다음에 있습니다.

48-49절을 읽어보실까요?

이 모습은 본문에서 말했던 노아 때의 사람들의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고…

결과는 어떻습니까?

50-51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이 말씀은 또한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반대로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자의 자세는 우리가 읽었던 로마서 13장에 있습니다.

말씀하길, 구원의 때가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즉,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사도 바울은 권면하길,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어둠의 일은 곧, 방탕하고 술 취하고 음란하고 호색하며 다투고 시기하는 일인데 이런 것들 하지 말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말씀합니다.

에베소서에서도 동일한 권면을 우리에게 줍니다.

엡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곧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최고의 준비는 주의 빛에 거하는 겁니다.

주의 빛에 거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아까 읽었던 이사야 2장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시겠습니다.

사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5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여호와의 빛, 주의 빛에 거하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 주의 말씀을 바로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의 말씀을 바로 지키는 것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최고의 준비입니다.

주의 말씀을 지켜 방탕하지 않고, 술 취하지 않고,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않고, 다투고 시기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준비입니다.

노아 때의 사람들이 탐욕과 정욕에 가려 심판을 준비하고 있는 방주의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시했듯이, 내 안에 욕심이 가득 차 있으면 주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가 없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라 했는데 그 말씀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욕심이 가득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 앞을 비추는 등불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장성하여 죄를 낳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기에 베드로 사도는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권면합니다 (벧전 2:11).

메시지 성경을 쓴 유진 피터슨은 같은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자기욕망을 채우려다가 영혼을 희생하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결국 오늘 본문은 급진적인 종말론으로 우리를 겁준다기 보다,

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하는지를, 그리고 윤리적인 삶, 즉 주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것입니다.

한 신학자의 해설입니다.

“예수의 종말론 이야기는 종말과 윤리가 함께 간다. 종말론은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윤리적 삶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6]

만약 말씀을 따라 사는 윤리적인 삶이 없다면 이단/사이비의 급진적인 종말론에 빠지기 쉽습니다.

1992년 사회에 일대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다미선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재림이 1992.10.28에 있을 것이기에 모든 재산을 다 팔라고 거짓 회유했습니다.

신천지는 아예 이만희 씨가 재림 예수라고 가르칩니다.

재림 예수라는 자가 본 부인 버리고 다른 여자랑 살면서 그 여자에게 후계를 물려주려 하고 있습니다.

144,000명이 모이면 종말이 온다면서 꽃다운 청년들 꾀어내어 학교, 직장, 가정 다 버리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법원에서도 신천지를 반사회적 집단으로 규정한 것이 옳다는 판결을 냈더군요.[7]

더 밝혀져야 하겠습니다만, 나라 지도부와 집권 여당에 이런 사이비 집단의 물력과 인력이 흘러 들어갔다는 언론의 보도는 탄식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분명 다시 오시지만 언제 오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디 오신다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면 올 때 오더라도 아예 나의 욕망을 다 이루기 전에는 오시지 말라고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우리 주님 속히 오실 것을 믿으시죠?

혹 더디 오시는 것 같아도 이리저리 눈 돌리지 마십시오.

늘 주의 빛에 거하기 힘쓰십시오.

오직 주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에 의지하여 빛의 갑옷을 입으십시오.

여기 저기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내가 예수라 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절대 쫓아가지 마십시오.

난리와 소요의 소문이 있고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고 전쟁이 일어나도 아직 끝은 아닙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에 혹해서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주의 빛, 그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할 때, 우리는 주님을 무서운 심판주가 아닌 우리의 영원한 신랑으로 기쁘게 맞이할 줄 믿습니다.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 primary stress

[1] John D. Barry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2, 2016).

[2] Richard H. Hiers, “Parousia,” ed. Mark Allan Powell, The HarperCollins Bible Dictionary (Revised and Updated) (New York: HarperCollins, 2011), 742.

[3] D.A. Hagner, Matthew 14-28 (Word Books, 1995), 716.

[4]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First Edition Notes (Biblical Studies Press, 2006), Mt 24:40.

[5] Ibid.

[6] Hagner, 721.

[7] http://www.nocutnews.co.kr/news/469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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