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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16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이름 – 마 1:18-25


우리 흔히 하는 말로, 사람은 이름 따라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의 이름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여러분의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이름에 대해서 찾다 보니까 개명사례로 웃지 못할 사연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부모가 설사 좋은 뜻으로 이름을 지어줬더라도 얼마나 이름 때문에 고생했으면 개명을 했을까요?

다시 한 번 이름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놀라운 이름을 소개합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기 650 여 년 전 그 아이의 이름은 예언되었습니다.

이 이름에는 이 이름이 누구로부터 왔고 그 이름을 소유한 자가 무엇을 할 것인지도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은 다른 그 어떤 누구에게도 허락된 적이 없는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임마누엘” 입니다.

이 이름에 대한 예언이 기록된 곳은 오늘 읽으셨던 이사야 7장 말씀입니다.

때는 아하스 왕이 유다를 다스릴 때였는데요.

주변에는 시리아와 앗시리아 라는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유다 땅을 침략하려고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북이스라엘이 시리아와 손을 잡고 남유다를 침략합니다.

유다 왕 아하스는 불안한 나머지 또 다른 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아하스 왕의 이런 행동이 좋지 않았어요.

결국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하십니다.

4.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7. …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14절 말씀이 오늘 본문 23절에 그대로 인용되었죠?

임마누엘 뜻이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결국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는데 왜 다른 나라에게 손을 벌리느냐 라고 하시는 책망입니다.

특히 이사야 7:14 말씀은 주께서 “친히” 주신 징조입니다.

다시 말해, 아하스 왕이나 남유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구원의 역사는 온전히 하나님께서 그 분의 의지로 “친히”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친히” 구원의 징조를 보이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친히” 구원 역사에 정점을 찍으십니다.

제가 정점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앞, 그러니까 마 1:1-17까지 무엇이 나옵니까?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의 족보가 나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족보만 몇 번 읽다가 성경 읽기를 포기했다는 간증 아닌 간증을 하시는데요,

사실 이 족보는 성경을 읽기 싫게 만드는 시시한 이야기나

나랑 관계 없는 남의 나라, 남의 가문 족보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하셨고

어떻게 그의 사람들을 부르셨고,

그 사람들을 통하여 스스로의 약속 즉, 창조 세계의 구원을 위해 약속하셨던 그 말씀들을 어떻게 이루셨는지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단순히 누가 누구를 낳았다 끄적여 놓은 것이 아니라 죄악 속에서 절망과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함께 해 오고 계셨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정점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이제 인간의 모습을 입고 그 역사 속으로 들어 오셨습니다.

그 장면이 바로 1:16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1:16절을 자세하게 풀어 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이 직접 등장하시는 구원의 드라마에 마리아와 요셉이 꽤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요셉이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가 잘 보여줍니다.

이것을 이따 오후성경공부 시간에 같이 살펴볼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아무리 의롭다 해도 그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마리아도 역시 아닙니다.

22절에서 주인공을 이야기합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그렇다면 주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하신, 이루실 일은 무엇입니까?

21절 말씀대로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 한 아들을 낳을 것이고 아들을 예수라고 이름 부를 것인데 그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이 구원자의 이름이 바로 임마누엘!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스스로 맹세 하셔서 별과 같은 모레와 같은 자손을 허락하셨어요.

다윗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시고 왕으로 삼으시고 그의 후손이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선지자들을 통해 수도 없이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다가

급기야 그 역사의 현장에 뛰어드셨어요.

예수를 통해서 말입니다.

인간의 능력과 상관없이 구원의 역사를 써 가시는 모습은 또 있습니다.

요셉이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 하되 그의 육신을 통하지 않고 말씀대로 성령으로 처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케 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창 3:15 말씀대로 남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은 마리아를 통해 예수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스스로 창조하신 창조의 법칙과 질서를 어길 정도로 놀라운 신비이지만 피조물을 위해 태초부터 늘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그 분의 자비와 긍휼을 생각한다면 전혀 못하실 일도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요셉이나 마리아가 아닌, 하나님 이십니다.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임마누엘, 그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왜냐하면 실제로 하나님은 그 이름대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의 찬양과 증거 속에..

그리고 우리의 숨결에..

어떤 이들은 자신의 부끄러운 일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또는 바꾼 채로 잘못된 일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들춰내시고

예고하시고

직접 드러내셔서

그 이름 그대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그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그 아들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곁에 영원히 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다시 오십니다.

곧 다시 오십니다.

주님 맞을 준비되셨습니까?

사랑의 주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시다.

예수 그리스도 능력의 주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시다.

모든 존귀와 영광과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어린 양,

다시 오실 만왕의 왕 주의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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