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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16 반드시 지불해야 할 대가 – 눅 14:25-33


여러분, ‘일 만 번의 법칙’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특정 분야에서 소위 가장 뛰어나다, 혹은 천재적이다 라며 인정받기 위해서는 최소 일 만 번 이상의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법칙입니다.

악기 연주자를 예를 들어, 4천 시간을 연습한 사람은 그저 취미로 보았을 때 잘 하는 사람,

7천 시간 이상 연습한 사람은 전문가,

일만 시간 이상 연습한 사람은 천재다 라고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각자 처한 환경이나 타고난 재능 등을 배제한 단순 통계에 의한 법칙이기는 합니다만,

일정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희생이 필요하고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렇듯 모든 일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예쁜 옷을 입고 가방을 들려면 그에 해당하는 값을 지불해야 하고 소위 명품이라는 제품들은 매우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하다못해 김밥 한 줄 이라도 먹으려면 그에 해당하는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다만 단 한 가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생입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려 했지만 오히려 허망하게 죽고 말았어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영원한 생명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란 말이죠.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믿으십니까?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값없이 거저 받지만 이렇게 거저 주시기 위해서 주께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값비쌉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은혜가 비싼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신의 아들을 대가로 세운 하나님의 희생인 때문이요,…하나님께 비싼 것이 우리에게 쌀 리 없[다].”[1]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저주의 나무 위에서 죽도록 하셨는데 천만금을 갖다 준 들 그 희생의 값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 (학 2:8) 하신 야웨 하나님께 천만금을 갖다 드린들 그 아들의 죽음을 대신할 수 있겠냐고요.

이런 엄청난 대가가 지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선물로 거저 주시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선물을 받은 동시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의 음성, ‘나를 따르라’

곧 예수의 제자가 되라는 부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으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꼭 제자가 되어야 합니까?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까?

존 스토트 목사님은 그의 마지막 책 [제자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이 땅에서의 순례 여정이 가까워 오는 지금, 내 생각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한다.”[2]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은 예수를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곧 예수를 선생 삼아 그의 모든 가르침을 힘써 지켜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어서 영생을 얻었다고 끝이 아니요,

바로 거기에서부터 비로소 우리의 새로운 인생 여정이 시작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의 제자’로써의 삶입니다.

하지만 구원을 거저 선물로 받는 것과 달리 예수의 뒤를 따르는 제자의 삶에는 대가지불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제자로써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5절에 보시면, 수많은 무리가 예수와 함께 가고 있다고 말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갑자기 뒤로 돌아서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뭡니까?

26-27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실까요?

26절 미워한다는 말은 조금 덜 사랑한다는 뜻을 가집니다.[3]

다시 말해, ‘미워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은 ‘저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족을 미워해라 로 받아들이기 보다 가족보다 예수를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33절도 읽어보겠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1. 26절 가족보다 예수를 더 사랑해야 함.

2. 26절 자기 목숨보다 예수를 더 사랑해야 함.

3. 27절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야 함.

4. 33절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함.

예수께서 가던 길을 멈추시고 돌아서서 자신을 따르던 많은 무리에게 이 네 가지를 이야기하신 이유가 뭐겠습니까?

같이 길을 걸어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에요.[4]

그 수많은 무리들이 마치 예수를 대단한 연예인 보는 것마냥 열심히 뒤쫓아 다니지만 정작 그가 가르치시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그 대중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셨지만,[5]

정작 그 대중들은 십자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어요.

[Not a fan/ 나는 팬(fan)이 아닙니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당신은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너무 쉽게 대답하지 마시라….어쩌면 당신은 단지 예수를 동경하는 팬 일뿐, 그가 당신의 자유로운 생활을 간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예수 안에 없다면, 더 이상은 없다.”[6]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겠다는 것은 곧,

단순히 내가 보고 싶을 때 보고

좋아하다가 실증 나면 버리는 수준이 아닌,

나의 온전한 삶 전체를 예수의 것으로 바꾸어 가는 결단입니다.[7]

예수처럼 되겠다고 아주 몸 부림 치는 삶이라고요.

내 삶 전체를 예수로 가득 채우려면 어찌 예수보다 가족을 혹은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스승이신 예수도 십자가를 지셨는데 나는 어찌 나의 십자가를 멀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선생이신 예수께서는 목숨도 버리셨는데 어찌 나의 소유를 주장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렇게 대가 지불에 대해 마침 예수께서 예를 들어주십니다.

첫 번째는 망대 건설 이야기입니다. (그림)

여기에서 망대는 포도원에 있는 것인데 위에서는 망을 보기도 하고 아래층은 저장고나 잠깐 쉬는 장소로 쓰이기도 했습니다.[8]

간단한 건축물이지만 그럼에도 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무턱대고 공사를 시작했다가 만약 돈이 모자라기라도 한다면 공사를 중단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30절 말씀처럼 사람들이 비웃는다는 거에요.

또 다른 예화는 조금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한 임금이 전쟁을 하게 되었어요.

자신이 거느린 병사들의 수와 적군의 수를 헤아려서 과연 이길 수 있을까를 가늠해 본다는 거에요.

자신의 병사 일 만 명으로 적군 이 만 명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데,

도저히 안될 것 같으면 적군이 가까이 오기 전에 어서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청하지 않겠냐 하는 겁니다.

화친을 맺는 것이 성 전체가 전멸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망대 건축 비용을 헤아리는 것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병사의 수를 가늠해 보는 것 둘 다

대가 지불에 대해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것은 곧 33절 말씀처럼 자기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조금 짓궂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우리가 떼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자꾸 소유를 버리라고 하시니까요.

그런데요, 이런 준비, 즉 내 가족, 자신, 소유보다 예수를 더 사랑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로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고 한다면, 오히려 자신은 물론 예수도 우스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두 실례는 예수를 따르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점검해 보라는 호소이다. 만일 그들이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수단과 전제—그리고 결국 준비성—가 결여된 채 그 일을 시작한다면 그들은 스스로를 우습게 만들고 예수와 그의 선포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셈일 것이다.”[9]

아까 한 책을 소개하면서 예수를 따르는 자라고 쉽게 대답하지 말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는 곧 아직도 내 가족이 우선이고

내 자신이 우선이고

내 소유가 우선인데

그럼에도 나는 예수의 제자입니다 라고 함부로 말하고 있지는 않느냐 하는 것이죠.

아직 예수를 이 세상 무엇보다

이 세상 누구보다

심지어 나 자신보다 사랑할 준비가 아직 안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냐는 거에요.

내 인생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인생을 예수의 마음대로 이끌어 가시도록 내어드릴 준비가 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팬이 아니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거에요.

아직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고

예수의 모습을 본받아 그 가르침대로 살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데

여전히 예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일이 참 쉽지 않죠?

하지만 마냥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예수께서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겠습니까?

실수투성이였고 배반을 일삼았던 열 두 제자들도 어쨌든 한 명을 제외하고는 끝까지 예수를 따르지 않았습니까?

또 한편으로 여전히 왜 예수를 따라야 하는지 물음표를 다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읽었던 신명기 30장 말씀과 시편 1편 말씀을 다시 한 번 깊이 읽어보시길 부탁 드립니다.

읽다보시면 깨닫게 되실 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놀라운 복을 받는 길은 바로 예수를 따르는 길임을 말이죠.

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말입니다.

[1] 나를 따르라 (大韓基督教書會, 1965), 26.

[2] 존 스토트, 제자도, (서울: Korea Inter-Vasity Press, 2010), 37, 40.

[3] Max Zerwick and Mary Grosvenor, A Grammatical Analysis of the Greek New Testament (Rome: Biblical Institute Press, 1974), 241.; J. Nolland, Luke 9:21-18:34 (Word Books, 1993), 762.

[4] 성경전서(관주 해설)(Nkgo88ti)(색인)(개역개정판) (대한성서공회, 2009), 눅 14:25.

[5] Nolland, 763.; 윤철원, 누가복음, 408.

[6] https://books.google.co.kr/books/about/Not_a_Fan.html?id=oX5PYgEACAAJ&redir_esc=y

[7] D. Willard, The Divine Conspiracy: Rediscovering Our Hidden Life in God (HarperCollins, 1998), 283.

[8] Eric M. Meyers, “Watchtower,” ed. Mark Allan Powell, The HarperCollins Bible Dictionary (Revised and Updated) (New York: HarperCollins, 2011), 1094.

[9] 성경전서(관주 해설)(Nkgo88ti)(색인)(개역개정판), 눅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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